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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沈陽 地域의 文化 遺跡 踏査 2005年 5月 17~19日 土地博物館大學
지역 개관 심양(션양)은 리아오닝성의 성도로서 중경, 상하이, 베이징, 티엔진에 이어 중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이다. '저무는 석양이 아름다운 도시'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션양은 시내를 흐르는 훈허로 인해 '沈河(심하)의 북쪽도시' 라는 돗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션양은 베이징으로 천도한 청 왕조로 인해 현재까지도 '리틀 베이징' 이라는 벌명을 지니고 있다. 만주족 청나라의 발상지이기도한 션양은 인구 685만명으로 32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동북 최대의 중공업지역이다. 과거 열대강국의 각축장이었던 션양 시내에는 청조의 건축양식과 러시아, 일본 스타일의 건축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다양한 스카이라인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 션양은 동북 3성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새로운 건축물이 하루가 다르게 속속 들어서고 있다. 도시역사 션양은 7천 2백년 전부터 형성된 유구한 역사의 도시로 션양이라는 지명은 금나라에 의해 사용되었다다. 1625년 후금을 세운 청조 누루하치가 션양에 수도를 정해 생징 (盛京-만주어로 무크텐이라 일컬었다. 1644년 청이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션양에 펑티엔부가 설치됨으로써 '펑티엔' 이라 칭하여졌다. 션양이라는 지명은 1929년 국민당 총사령관이었던 짱쉬에리앙에 의해 다시 부활했다. 그러나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으로 인해 션양이 일본에 의해 강제 점거 당하는 비운을 맞게 되어 또다시 '펑티엔'으로 불렸다. 1945년 8월,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국민당과의 내전으로 인민해방군0| 승리함으로써 션양이란 지명을 되찾게 되었다. 션양은 우리나라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다. 고구려 때에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션양 주변에 안시성과 오골성, 건안성이 자리했다. 조선 인조 14년 병자호란 때에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불모로 골려왔을 뿐 아니라 '척화론' 을 주장하던 3인의 삼학사마저 무참히 처형당한 아품을 지닌 역사적인 땅이다. 일제치하에는 만주로 드나들던 독립군의 주요 활동무대로 독립운동의 열기가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지역이다. 1. 省/市명 : 요녕성 沈陽市 10. 언어 : 조선족만 고유언어를 사용하며, 한족이나 나머지 소수민족은 모두 중 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11. 종교 : 기독교, 천주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 등 5 종의 종교가 있고 종교단체가 7개, 활동장소가 172 곳, 교직인원이 279명정도 된다. 그중 불교가 寺廟 11개에 중, 라마가 118명; 도교가 宮官 3개에 乾坤도사 46명; 이슬람교가 청진사 23개에 阿 34명; 기독교가 교회당 122개에 敎牧인원이 59명; 천주교가 교당 13개에 신부, 수녀가 22명 된다. 이밖에 천주교신학원, 동북기독교신학원, 심양이슬람교경학원 등 신학원도 있다. |
Click the photo or the title for detail. Updated : 2005.0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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