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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安 磨崖三尊佛
國寶 第307號 時代 : 百濟(6~7世紀) 忠淸南道 泰安郡 泰安邑 東門里 山42 2008年 10月 7日 土地博物館大學
泰安읍 백화산 정상 가까이, 서해가 굽어 보이는 커다란 바위(높이 약 5.3m, 너비 약 5.4m 두께 약 5.4m)에 우리나라 石窟庵의 始原으로 볼 수 있는 龕室(감실, 높이 3.93m, 너비 3.45m)을 만들고, 거의 丸彫에 가깝게 三尊佛을 陽刻하였다.
일반적으로 중앙에 여래불을 주존불로 彫象하고 좌우에 脇侍菩薩(협시보살)을 배치하는 1여래 2보살의 삼존형식이 아닌, 중앙에 보살을 주존불로 조상하고 좌우에 여래불을 협시불로 조상한 1보살 2여래의 특이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하나뿐인 圖像이다.
지난 1995년, 그동안 흙 속에 묻혀있던 대좌가 드러나면서 삼존상의 웅장한 규모가 빛을 보게 된 泰安磨崖佛像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미술품으로 磨崖佛의 효시이며, 신라는 물론 일본의 불교조각에도 영향을 미쳤고 百濟시대 불교유입 루트를 밝힐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또한, 6세기 중반경의 中國 北齊(550~577) 불상양식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며 瑞山磨崖三尊佛像(국보 제84호)에 선행하는 조형양식을 지닌 百濟 最古의 磨崖佛像이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보살입상 : 크기 223cm
좌우 우람한 두 불상 사이에 끼여 있는 듯 뒤로 물러나 작게 새겨진 보살입상은 관대(冠帶)가 좌우로 뻗은 높은 삼면관(三面冠)을 쓰고, 두 손으로는 보배 구슬(寶珠)로 여겨지는 지물을 감싸 쥐고 있는 봉보주(奉寶珠) 보살상이다.
좌우 양편에 모사 뿔 같이 길게 나온 조각형상부터 좌우로 길게 늘인 관대모양의 장식이 가슴위로 늘어져 있다. 타원형으로 길고 통통한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어 원만상이며, 신체는 원통형으로 직립해 있다.
어깨를 덮어 내린 천의는 길게 내려와 무릎 부분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며 묵중하게 처리되었고 배 앞에 모은 두 손은 오른손을 위로하여 보주를 감싸 쥐고 있다. 여래상과 달리 양감이 적고 낮은 돋을 새김이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고 좌우 대칭을 이룬 조각수법이다.
얼굴에 살짝 번지는 百濟의 미소 여래입상 : 크기 : 왼쪽 306cm, 오른쪽 296cm
좌우 불상의 얼굴은 둥글고 통통 하게 살이 많아 부피감이 있으며, 팽만한 뺨은 강건한 인상을 보이고 온 얼굴에 큰 미소가 번지고 있어 위엄하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풍겨 주고 있다.
민머리(素髮)로 표현한 머리에 작은 육계(肉髻)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없고 큼직한 두광에는 무늬가 없다.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장대한 체구는 불상의 장엄한 위풍을 나타낸다. 천의는 가슴이 넓게 열린 대의를 착의하였고 그 안에는 실타래 모양의 내의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왼쪽상은 시무외인·여원인의 통인을 하고 오른쪽 상은 왼손으로 보주(혹은 합)를 들고 있다. 연화대좌 위에 두발로 버티고 서 있는 묵중한 자세는 무한한 자비와 순진무구한 百濟불교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百濟人의 진취적인 기상을 나타낸 연화대좌 : 크기 : 높이 50cm, 넓이 123cm
묵중한 磨崖佛像을 떠받치고 있는 연화대좌는 11조각의 흩꽃잎 연화문의 복련으로 중앙이 넓고 반듯한 한 잎을 제외하고 끝이 뾰족하고 날카롭다.
좌우 대칭으로 꽃잎이 밖으로 돌아 끝을 위로 꺾어 올려 간결하면 서도 소박하고, 날렵하면서도 명쾌하여 생기 있는 百濟人의 진취적인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연화는 5세기 성총이나 무용총 등의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고, 무열왕릉의 왕비 머리받침대에서 보여 주목된다.
瑞山과 泰安 磨崖三尊佛의 차이점
瑞山 磨崖三尊佛과 泰安 磨崖三尊佛은 자연환경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백화산 정상의 泰安 磨崖佛은 탁 트인 해안선을 향해 천하의 절경과 마주하고 있으며 특히 천명한 날의 낙조는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泰安반도에서 부여로 향하는 지름길 어귀에 자리 잡은 瑞山 磨崖三尊佛은 주위의 산세가 유수하며 절경을 이루고 있다.
泰安 磨崖三尊佛은 560년대 中國 北齊佛앙식을 많이 반영하고 있어서 이 불상의 제작 연대는 600년에 가깝다. 이런 형식의 불상이 中國과 교역하던 교두보인 泰安반도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같은 지역이자 부여로 가는 교통로에 있는 磨崖佛이 바로 瑞山 磨崖三尊佛이다. 중후하고 웅위한 체구, 가슴의 띠매듭이나 백호(白豪)의 표현 등에서 泰安 磨崖佛과 동일한 양식임을 보여주지만 세련된 조형감각 등에서 사실적인 양식이 더 진전되었기 때문에 이 불상은 泰安 磨崖三尊佛에 잇따라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瑞山 磨崖三尊佛과 泰安 磨崖三尊佛은 우선 다른 磨崖佛에서 볼 수 없는 앙식상의 특징이 있다.
泰安 磨崖三尊佛은 중앙에 본존불,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배치 형식에서 벗어나 중앙에 보살, 좌우에 불상을 배치하고 있어 매우 특징적이다. 瑞山 磨崖三尊佛은 배치상으로는 일반적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좌협시보살은 통식에서 벗어난 반가사유상을 배치하고 있다. 또 泰安 磨崖三尊佛은 병풍처럼 서 있는 바위를 약간 파서 감실형으로 만들면서 삼존불을 새긴 점에서 평범한 바위에 조각된 瑞山 磨崖三尊佛과 비교된다.
泰安 磨崖三尊佛의 좌우불상과 瑞山 磨崖三尊佛의 본존불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 팽이모앙의 육계, 두꺼운 법의 수인 등에 별차이가 없다. 그러나 瑞山 磨崖三尊佛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온화한 느낌을 주지만 泰安 磨崖三尊佛은 얼굴이 신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서 서로 대비된 느낌을 주며 좌불의 왼손은 신체와 함께 어색하게 표현되어 있어 능숙한 기량에는 瑞山 磨崖佛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瑞山, 泰安 磨崖三尊佛의 가슴띠 매듭은 中國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中國과 다른 우리나라 불상만의 형식적 특징이다. 瑞山 磨崖佛 본존의 광배는 연화문과 화염문이 정교하게 표현된 반면 泰安 磨崖佛은 약간의 앙각만으로 확인될 뿐이다. 泰安 磨崖佛의 중앙 보살은 좌우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지만 더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이 보살은 瑞山 磨崖佛의 우협시보살과 비교될 수 있지만 능숙한 기량과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앙 磨崖佛은 600년을 전후하여 泰安 磨崖佛에 이어 瑞山 磨崖佛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양 磨崖佛은 형식 적인 면이나 기교적인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두고 있어 당시의 불교계의 활발한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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